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프로필·월급 47000원 받던 기자에서 480억 디자이너로 (수상 도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이자 백남준문화재단 대표이사장인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입니다.

1976년 국내 최초의 디자인 전문지였던 월간 <디자인>에 입사해 47000원을 받고 기자로 시작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폐업 위기에 놓이자 1980년 결혼 자금 1억 원을 들여 직접 인수하며 시작됐습니다.

인수 6개월 만에 자금이 바닥나고 언론 통폐합으로 강제 폐간까지 당했지만,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의 노력 끝에 극적으로 석 달 만에 복간을 이뤄냈습니다.

이후 1987년 국내 최초의 홈 인테리어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을 창간해 창간 8개월 만에 흑자를 기록했고, <럭셔리>, <마이웨딩>, <맨즈헬스>, <스타일H> 등 전문지를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디자인하우스를 연 매출 최대 480억 원 규모의 콘텐츠 그룹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입니다.

2020년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선정하는 제7대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CEO입니다.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프로필·월급 47000원 받던 기자에서 480억 디자이너로 (수상 도서)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프로필·월급 47000원 받던 기자에서 480억 디자이너로 (수상 도서)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주요 이력

  • 1976 – 홍익대학교 응용미술과 졸업
  • 1977 – 월간디자인 편집부 기자로 입사
  • 1980 – 월간디자인 발행인 (잡지사 인수)
  • 1987 – 행복이가득한집 창간, 발행인
  • 1993 –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수료
  • 1994 – 디자인하우스 발행인,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개최 시작
  • 1998 – 동덕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 (~2002)
  • 2002 –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개최 시작
  • 2005 – 스타일H, LUXURY 발행인
  • 2012 – 제5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013)
  • 2015 – 백남준문화재단 대표이사장 취임
  • 2020 – 제7대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액

이 밖에 서울시 창의서울포럼 전략사업부문 부대표,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실 정책자문위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자문위원, 중앙공무원교육원 객원교수,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문화행사위원회 위원, 서울디자인재단 비상임이사 등을 지냈으며, 전주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마케팅클럽(KMC) 고문과 한국CEO포럼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수상 이력

  • 1986 – 문화부장관 표창장, 한국시각디자인협회 감사패, 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공로패
  • 1990 – 제25회 잡지언론상 경영상
  • 1991 – 상공자원부 장관상
  • 1993 – 한국 아트디렉터즈클럽 우수디자인 잡지 선정
  • 1996 –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가장 문학적인 잡지상
  • 1997 – 국무총리 표창(잡지의 날)
  • 1998 – 중소기업인상, 전통식품산업화상, 제33회 잡지의 날 국무총리 표창
  • 2000 – 외국기업의 날 우수 외자유치 표창
  • 2001 – 산업자원부 주최 제4회 디자인진흥대회 장관상
  • 2002 – 대통령 동탑산업훈장
  • 2005 – 노동부 남녀고용평등 국무총리상
  • 2008 – 이탈리아정부 최고문화훈장, 자랑스러운 홍익인상
  • 2020 – 제7대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액

특히 2008년 받은 이탈리아정부 최고문화훈장은 이탈리아 연대의 별 훈장 고위 슈발리에 등급으로, 디자인 분야에서의 국제적 공로를 인정받은 사례로 꼽힙니다.

디자인 하우스 CEO 이영혜 도서

  •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스물다섯 해 동안 행복이가득한집을 만든 이영혜) – 디자인하우스, 2012.07.30 출간
  • 창의융합 콘서트(급변하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힘) – 2013.07.11 출간

이 밖에 이영혜가 대표로 있는 디자인하우스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약 240만 부),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약 70만 부) 등의 베스트셀러 단행본을 비롯해 지금까지 1,050여 종의 도서를 출간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영혜 CEO 방송 활동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2026)

방송에서 결혼 자금 1억 원으로 잡지사를 인수한 뒤 겪은 폐업 위기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복간을 이끌어낸 사연, 연 매출 480억 원까지 성장한 사업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한남동 자택과 서울 시내 400평 규모의 사옥 내부를 처음으로 공개했으며, 집 안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가구로 약 1억 원에 달하는 자개·옻칠 테이블을 소개했습니다.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재산

이영혜 디자인하우스는 2013년경 연 매출 최대 480억 원을 기록했는데 2000년 독일의 미디어기업 부르다사에 지분 49.9%를 100억 원에 매각했다가, 이후 경영권 확보를 위해 227억 원을 들여 지분을 되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사옥은 4개 동, 400평 규모로 알려졌습니다.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프로필

  • 본명 이영혜
  • 생년월일 1953년 (만 73세)
  • 고향 강원도 원주 | 국적 대한민국
  • 거주지 서울 한남동
  • 키 | 몸무게 | 혈액형 | 종교
  • 학력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 |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 가족 결혼 미혼
  • 소속사 디자인하우스(대표이사)
  • SNS 공식홈페이지

잡지의 여왕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대표이사

‘대한민국 잡지의 여왕’ 이영혜 대표이사는 1953년 강원도 원주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 책을 읽어드리던 습관이 웅변으로 이어졌고, 옷이나 학용품을 살 때도 직접 고르게 했던 부모님의 교육 방식은 훗날 디자인 안목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 진학했을때도 회화가 아닌 응용미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무엇이 어딘가에 어떻게 활용되었을 때 잘 되겠다, 라는 느낌이 올 만큼의 감각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디자인지 <도무스>를 본 것을 계기로 이후 무역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가 1976년 창간된 월간 <디자인>을 접하고 2호부터 기자로 합류했습니다.

무역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중 교보문고에 쌓여 있던 대학 재학 중 월간 <디자인> 창간호를 보고 발행인을 직접 찾아가 입사를 청했습니다. 무역회사에서 받던 월급 8만 7천 원보다 낮은 4만 7천 원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입사해, 2호부터는 잡지 제작을 주도했습니다.

결혼자금 1억원으로 시작한 잡지의 여왕

월급 47000원을 받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스물일곱이던 1980년, 잡지사가 경영난에 빠지자 직접 인수에 나섰습니다. 발행인이었던 건축학 전공 대학원생이 유학을 떠나면서 잡지사가 방치되자 직접 경영에 나섰습니다. 어머니에게 결혼 자금을 부탁해 1억 원에 인수했지만, 6개월 만에 자금이 바닥나고 언론 통폐합 때 잡지가 강제 폐간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큰 돈인 1억원을 들인 잡지사가 폐간 위기에 놓이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복간을 극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문화공보부와 계엄사령부, 사회정화위원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복간을 요청했고 청와대에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 벌에 148달러에 팔리는 이탈리아제 와이셔츠와 단돈 8달러에 팔리는 국산 와이셔츠의 차이는 디자인에서 온다”는 내용의 편지가 받아들여져 석 달 만에 복간이 이뤄졌습니다. 언론 통폐합 이후 복간된 유일한 잡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모회사 없이 편집부만 있는 회사 구조 때문에 적자가 이어졌으며, 구독료 확보를 위해 독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가면서 겨우 운영하다가 1987년 국내 최초의 홈 인테리어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을 창간해 매달 한 가정을 선정해 집 전체를 무료로 꾸며주는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창간 8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면서 기사회생했습니다.

당시 인기로 인해서 공정성을 위해 경찰 입회하에 당첨자를 추첨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마이웨딩>, <맘앤앙팡>, <맨즈헬스>, <럭셔리>, <스타일H> 등 시대의 흐름을 읽은 전문지를 잇달아 성공시켰고, 디자인하우스를 연 매출 최대 480억 원 규모의 콘텐츠 그룹으로 키워냈습니다.

2000년에는 자금난 해소를 위해 독일 미디어 기업 부르다사로부터 100억 원을 투자받아 지분 49.9%를 매각하고 조인트벤처를 설립했으며, 이후 회사가 안정되자 경영권 확보를 위해 227억 원을 들여 지분을 되사들였습니다.

도전과 실패의 역사 속에 만들어진 디자인하우스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실패도 많았는데 2006년 창립 30주년에는 서울 올림픽공원에 종이 기둥과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을 세워, 50억 원을 투자해 20억 원의 적자를 봤음에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밝혔습니다.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작은 디자인 공화국을 만들자”, “세상 어디에 나가서도 겸손하되 지지는 말자”, “Do it(일단 해봐)”라는 말과 함께 재충전을 위해 3년마다 유급 안식월을 제공하면서 국내 최고의 잡지사로 성장시켰습니다.

2013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잡지 <더 셀러브리티>를 창간해, 초판 5만 부 중 1만 7천 부가 일본에서 판매돼 근 10년 만의 재판 사례로 언급됐습니다. 끝없는 도전 끝에 2020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인생은 때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간다”는 말로 자신의 인생 여정을 소개했습니다.

디자인 하우스와 결혼한 이영혜 대표이사

30여 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디자인 하우스 이영혜 대표 이사는 결혼과 출산 대신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온 삶을 선택했으며, 스스로를 ‘콘텐츠 프로바이더’에서 ‘콘텐츠 디벨로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밝히며 대한민국 디자인과 잡지의 세계에서 독보적인 여정을 남겼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제 스케줄을 보면 기절할 거예요. 제가 일없이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밝혔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일에 있다보니 결혼적령기를 놓쳤고 때로는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 후회할 때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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