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최상위권 대기업 그룹인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을 모두 창업한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이병철 회장입니다.
대한민국 내 재계 서열 최상위권 그룹 3군데가 모두 이병철 1세대 초대 회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업 규모가 작아졌지만 제지업계 최대 규모 기업인 한솔그룹과 국내 2위의 미디어 기업인 중앙그룹 & JTBC, 유통특화 준대기업인 BGF그룹까지 범삼성가입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차남 이창희의 고명딸 이혜진이 이끄는 래딕스글로비즈 및 래딕스플렉스와 남편 조명희가 이끄는 디엠퓨어텍, 3녀 이순희의 아들인 김상용이 이끄는 알머스(前 영보엔지니어링) 등도 범삼성가에 속하는 기업입니다.
대한민국을 반도체 왕국으로 만든 삼성 이병철 회장입니다.

목차
삼성 반도체 왕국을 만든 이병철 회장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천석꾼 지주였던 아버지 이찬우와 어머니 안동 권씨 권재림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조부 이홍석은 성호학파 계열의 유학자로 서당 문산정(文山亭)을 세운 인물로 다섯 살 때부터 이 서당에서 천자문·사서삼경·논어 등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진주 지수공립보통학교, 서울 수송공립보통학교, 중동중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가 건강 악화로 1931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습니다. 귀국 이후 한동안 특별한 일 없이 노름이나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다 집에 돌아와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사업에 투신했습니다.
(※ 와세다 대학 시절 롯데 신격호 회장,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 동기였습니다.)
이후 아버지로부터 연수 300석의 토지를 사업 자본으로 받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36년 마산에서 첫 번째 사업으로 협동정미소를 차렸습니다. 1938년 3월 자본금 3만 원으로 대구 수동에 삼성그룹의 시초인 삼성상회를 설립했습니다.
여담으로 ‘삼(三)’은 크고 많고 강한 것을, ‘성(星)’은 밝고 영원히 빛나라는 의미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상회는 청과류·건어물·국수 등을 취급하며 만주와 중국에까지 수출하면서 규모를 키웠습니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고, 1947년 상경하여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며 무역업에도 본격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 발발로 삼성물산공사의 자산 대부분을 잃었지만 전쟁 중에도 지켜낸 대구 과수원과, 조선양조 양조장, 삼성상회를 종잣돈으로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해 고철을 수집해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고철을 일본에 팔고 다시 중국에서 설탕과 비료를 수입해 1년 만에 6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일구었습니다.
(※ 여담으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전국에 널린 구리 탄피를 모아 재수출하면서 초대박이 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부산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적 제당 생산시설인 제일제당공업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국내 설탕 수요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지만, 창립 3년 만에 수입 의존도를 100%에서 7%로 낮추는데 성공했습니다.
1954년에는 제일모직을 설립했고 1958년에는 안국화재를 인수하면서 당시 국내 최고 기업가로 떠올랐습니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창설 및 초대회장 취임을 주도했으며, 1963년 동방생명을 인수하고 TBC 동양방송(1964년)과 중앙일보(1965년)로 언론에도 진출했습니다.
사카린 밀수 사건과 이건희 회장
승승장구 하던 중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하게되고 이후 책임을 지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한국비료공장과 대구대학을 정부에 헌납했습니다. 삼성그룹을 대신 경영했던 장남 이맹회와 한때 쿠데타를 시도했던 차남 이창희는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고 막내아들인 셋째 아들 이건희가 1976년 삼성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1974년에는 울산에 삼성석유화학을 설립했고 1977년에는 우진조선과 대성중공업 조선서를 인수하면서 현 삼성중공업의 발판을 닦았습니다. 연이어 삼성종합건설주식회사와 방위산업체인 삼성정밀을 설립했습니다.
삼성전자 이병철 반도체 진출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가전 분야에 뛰어들었을때는 연 매출 3700만원에 불과했지만 1978년 흑백텔레비전 연간 생산량 세계 최고 기록을 수립하자, 1982년 암 수술의 고비를 넘기고 73세의 나이에 미국경제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단했습니다.
삼성은 1974년 이건희가 사재를 털어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가 이미 경영위기를 겪은 바 있었고 당시에는 트랜지스터나 생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한국반도체 회생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깨닫고 1983년 3월 공식적으로 진출해서 11월 삼성 개발팀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치킨게임이 시작되는데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64K D램 가격을 대폭인하하자 일본기업들도 덤핑공세를 하면서 1984년 한해에만 1300억원의 적자를 입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생산라인 증대에 신제품 개발에 나서서 1984년 256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86년에는 1Mb D램을 출시하면서 반도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안타깝게도 1976년 위암판정을 받고 1985년 폐암 진단을 받은 뒤에 사업을 이어가다 1987년 11월 19일 77세로 사망하면서 삼성의 반도체 왕국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반도체에 대한 유지를 받든 진대제 전 장관을 필두로 1989년 세계 2번째로 16mb 메모리를 개발했고 1992년 64Mb를 시작으로 256MBb, 1Gb D램을 세계최초로 개발하면서 반도체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
여담으로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에서 자동차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것이 고작이었고 후에 이건희가 삼성자동차를 설립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사회 환원을 실천했으며, 1982년 호암미술관을 개관하는 등 문화사업도 함께 펼쳤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핵심 경영철학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 로 요약되는데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채용했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는 인사 원칙으로 유명합니다.
이병철 삼성그룹 정보
- 설립 1938년 3월 (삼성상회 창립 기준)
- 국가 대한민국
- 산업 전자·반도체·금융·물산·건설·바이오·생명보험·화재보험 등
- 반도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 창업자 이병철
- 경영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3세대, 이병철 손자)
- 이사회 삼성전자 이사회 중심 (계열사별 별도 이사회 구성)
- 본사 소재지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기준)
- 링크 https://www.samsung.com/sec/
이병철이 창업한 대기업만 해도 삼성그룹을 필두로 제일제당 계열(현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등 무려 4개의 대기업을 일으켜세웠습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반도체, 금융(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 물산·건설(삼성물산), 중공업(삼성중공업), 엔지니어링(삼성E&A), 정보통신(삼성SDS), 바이오(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 호텔(호텔신라), 에버랜드(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광고(제일기획)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계열사를 두고 있습니다.
이병철 수상 및 주요 이력
수상 이력
- 1969 금탑산업훈장
- 미국 세계최고경영인상
- 1987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1995 제2회 한국경영사학회 창업대상 (추서)
- 일본 훈일등서보장 (추서)
- 1970 와세다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 1982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주요 이력
- 1910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출생
- 1922 지수공립보통학교 3학년 편입
- 1926 서울 중동중학교 입학
- 1926 박두을과 혼인
- 1929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입학
- 1931 건강 악화로 와세다대학교 중퇴, 귀국
- 1936 마산 협동정미소 공동 창업
- 1938 대구 삼성상회 설립 (삼성그룹 창업)
- 1942 조선양조 인수
- 1948 삼성물산공사 설립
- 1951 삼성물산 재설립
- 1953 제일제당 설립
- 1954 제일모직 설립
- 1958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인수
- 1961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 창설 및 초대 회장 취임
- 1963 동양TV 방송 설립,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 1964 한국비료 설립
- 1965 삼성문화재단 설립, 중앙일보 창간
- 1966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설립, 사카린 밀수 사건 적발로 경영 일시 사퇴
- 1968 경영 복귀
- 1969 삼성전자 설립
- 1972 제일합섬 설립
- 1973 제일기획, 호텔신라 설립
- 1974 삼성중공업, 삼성석유화학 설립
- 1976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개장, 위암 진단 후 수술
- 1977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취임
- 1978 삼성반도체 설립
- 1982 호암미술관 개관, 삼성종합연수원 개원,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 1983 반도체 VLSI 사업 투자 선언, 64K D램 개발 성공
- 1985 폐암 진단
- 1987 별세 (향년 77세)
이병철 도서 & 방송
※ 책 : 호암자전 (자서전)
※ 방송
- 정욱 – MBC 드라마 《제3공화국》 (1993)
- 정욱, 전광렬 – MBC 드라마 《영웅시대》 (2004)
- 이성민 –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2022)
특히 2022년 방영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배우 이성민이 삼성 창업주 이병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현대그룹 정주영과의 라이벌 관계도 나오는데 사실 사망하기 전인 1987년까지는 반도체가 치킨게임을 벌이던 시절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9000억원에 불과했고 주가는 2만원대로 한국통신, 포항제철 (현 포스코)에도 밀리는 기업이었습니다.
반면 현대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 재계 서열 1위를 유지했지만 반도체가 폭발하면서 지금은 시총 2000조에 달하는 삼전에 비하면 초라해 졌습니다. 여담으로 반도체 산업에 뒤늦게 뛰어든 현대와 LG 반도체는 IMF를 이기지 못했고 당시 계열사 정리를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하이닉스입니다.
삼성가 이병철 가계도 & 가족

1926년 박팽년의 후손인 박기동의 넷째 딸 박두을(1907년생)과 중동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기에 결했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이후에도 학업을 이어가 와세다대학교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박두을 여사의 친정 쪽으로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당고모 관계에 해당합니다.
이병철 박두을 부부 사이에는 1남 5녀들 두었는데, 장녀 이인희(1929~2019)는 한솔그룹 고문으로 활동했고, 장남 이맹희(1931~2015)는 CJ그룹 명예회장을 지냈고 차남 이창희(1933~1991)는 새한그룹을 이끌었습니다.
3남 이건희(1942~2020)는 삼성전자 회장으로 삼성그룹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켰습니다. 5녀 이명희(1943년생)가 바로 신세계그룹 회장으로 정용진 부회장이 아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사돈인 홍진기가 이어 받았습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뿌린 씨앗으로 글로벌 최고의 회사가 된 삼성전자와 함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삼성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병철 프로필
- 영어 Lee Byung-chul | 한자 李秉喆 | 본명 이병철
- 생년월일 1910년 2월 12일
- 사망 1987년 11월 19일, 향년 77세
- 고향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 국적 대한민국 | 본관 경주
- 키 − | 몸무게 − | 혈액형 − | MBTI − | 종교 유교(성리학) → 원불교 → 유신론(불가지론)
- 학력 1923 지수공립보통학교 졸업 / 1929 중동중학교 졸업 / 1931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중퇴 / 1970 와세다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 1982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 군대 의무복무 없음
- 가족 부인 (아내) 박두을 (1907~2000) / 자녀 이인희(장녀)·이맹희(장남)·이창희(차남)·이숙희(차녀)·이순희(3녀)·이덕희(4녀)·이건희(3남)·이명희(5녀)·이태휘(4남)·이혜자(6녀)
- 부모 아버지 이찬우(1874~1957), 어머니 안동 권씨 권재림(1881~1959)
- 소속사 삼성그룹
- 참고 나무위키 / 위키피디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