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부터 취미로 행글라이더를 시작했다는 진글라이더 송진석 대표는 1999~2005년 세계패러글라이딩 선수권대회 1위를 차지하는 등 업계에서 명품을 만드는 장인입니다.
송진석 패라글라이딩 대표는 2001년 대한민국 산업포장 수상, 2007년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인증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진글라이더를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이끈 장본입니다.
송진석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국내에 유일한 패러글라이딩 제조사에서 개발 이사로 일했다 IMF로 회사가 문을 닫자 친분이 있던 한 일본인 선수의 간곡한 부탁으로 패러글라이더를 다시 만들었고, 이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이후 꾸준히 성장해 2010년에는 무역의 날 오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진글라이더 송진석 대표입니다.

목차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송진석 진글라이더 대표

195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1977년 홍익대학교 조선공학과 신입생 시절 행글라이더를 접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막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행글라이더에 푹 빠졌지만 대학 3학년 때 심각한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얼굴이 으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내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몸을 추스르자 “싸구려 글라이더를 타다 사고가 난 모양이다. 성능 좋은 걸로 다시 장만해라”며 두툼한 돈 봉투를 내밀며 오히려 후원해 주었습니다.
1983년에는 정몽준 회장의 후원으로 독일에서 열린 행글라이더 국제 대회에 참가하였고, 이를 계기로 독일로 건너가 행글라이더 공장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글라이더 제작 기술을 익혔습니다. 당시 독일 업체의 제안으로 패러글라이더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고,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유럽 각국과 일본 업체들로부터 디자인 의뢰가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국내 패러글라이더 제조사인 ㈜대교 엔터프라이즈에서 개발이사로 재직하며 그가 설계한 패러글라이더를 탄 선수들이 국제 대회를 잇달아 석권하였고, 디자이너 송진석의 이름은 세계 패러글라이딩계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1997년 말 IMF 사태로 회사가 문을 닫자 “다시는 글라이더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전 세계 바이어들의 투자 제안과 일본 바이어의 2,000만 엔 선수금, 그리고 성도어패럴 최형로 회장의 물류 창고 지원으로 1998년 8월 (주)진글라이더를 창립하였습니다.
창립 직후 내놓은 경기용 패러글라이더 ‘부메랑’으로 일본 선수가 1998년 독일 세계 챔피언 대회와 패러글라이더 월드컵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초보자용 ‘볼레로’를 비롯해 ‘갱스터’, ‘밴디트’, ‘보난자’ 등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키며 진글라이더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갱스터’ 모델에는 하회탈 문양을 대문짝만하게 새겨 넣으며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부심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진글라이더 사옥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테스트 파일럿들과 함께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회사에는 튀르키예, 스페인,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엘리트 파일럿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K-날개’는 15년 이상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점유율 1위가 되기까지 인생에는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대학 3학년 때 행글라이더 추락 사고로 얼굴이 으깨지고 갈비뼈가 부러졌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오른쪽 뺨에 남은 깊은 흉터와 왼쪽 다리의 절뚝거림은 평생 하늘과 싸우며 얻은 상처입니다. “내가 다쳐야 소비자가 안전하다”는 신념 아래 60대가 된 지금까지도 직접 시험비행을 하며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패러글라이더들 사이에서 ‘구루(정신적 스승)’로 유럽 공항에만 가도 존재감은 압도적인 패러글라이딩의 전설입니다. 50년에 걸친 비행 인생 동안 탄생시킨 패러글라이더 날개는 10만에서 15만 개에 달하는 명품패러글라이딩의 주인공입니다.
진글라이더 정보
- 기업명 (주)진글라이더(GIN Gliders)
- 설립 1998년 8월
- 국가 대한민국
- 산업 항공레포츠 제조업, 패러글라이더 제조 및 판매
- 주요 제품 패러글라이더(경기용, 초보자용, 크로스컨트리용), 패러글라이딩 용품
- 창업자 송진석
- 경영진 송진석 대표이사
- 본사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송진석 진글라이더는 연간 약 1,000만 달러(한화 약 113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입니다. 전체 생산량의 90%가 유럽, 남미, 일본 등 해외 시장으로 수출되며, 세계 패러글라이더 시장에서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무역의 날 오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으며, 연구개발비를 매출액의 20% 이상 투자하며 기술력 유지에 힘쓰고 있습니다.
진글라이더는 패러글라이더 설계, 제조, 판매를 주력 사업으로 경기용부터 초보자용, 크로스컨트리용까지 다양한 등급의 패러글라이더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패러글라이딩 의류, 가방, 헬멧 등 관련 용품을 함께 제작 판매하고 있으며, 문경활공랜드에 투자하여 텐덤 체험비행과 교육 사업에도 진출하였습니다.
송진석 수상 및 주요 이력
- 1996년 PWC 디자이너상 1위
- 1997년 PWC 디자이너상 1위
- 1999년 PWC 디자이너상 1위
- 2000년 PWC 디자이너상 1위
- 2001년 PWC 디자이너상 1위
- 2001년 대한민국 산업포장
- 2002년 백만불 수출의 탑
- 2004년 삼백만불 수출의 탑
- 2007년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인증
- 2010년 오백만불 수출의 탑
송진석 약력 & 이력
- 1977년 홍익대학교 조선공학과 졸업
- 1983년 독일 행글라이더 국제 대회 참가
- 1986년 국내 최초 패러글라이더 소개
- 1992년 ㈜대교 엔터프라이즈 개발이사(1997년까지)
- 1995년 제4회 일본 세계패러글라이딩 선수권대회 출전
- 1998년 8월 (주)진글라이더 창립
- 2001년 10월 패러글라이딩월드컵(PWC) 집행위원
- 2002년 대한민국항공회 이사
- 2005년 7월 항공우주소년단 이사
- 2006년 한국활공협회 회장 재임(조종사 자격증 제도 신설)
- 2016년 개성공단 철수
패러글라이딩 송진석 방송 활동
-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2023년) – 패러글라이딩계 살아있는 전설로 출연, 서장훈의 인생 첫 고공비행 도전을 함께 함
진글라이더 송진석 대표 가족 & 재산
아버지가 내과 의사로, 대학 시절 행글라이더 추락 사고 후에도 아들이 계속 비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후원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 후에도 패러글라이딩 비행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재산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진글라이더 사옥과 문경활공랜드에 대한 투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의 대표로서 명품 패러글라이더를 만들고 있습니다.
진글라이더 대표 송진석 프로필
- 영어 Song Jin Seok | 본명 송진석
- 생년월일 1957년 2월 (나이 69세)
- 고향 충청남도 천안시 | 국적 대한민국
- 키 – | MBTI – | 종교 –
- 학력 홍익대학교 조선공학과 졸업
- 군대 –
- 가족 배우자 -, 부모님 부친(내과 의사, 별세)
- 소속 진글라이더
- SNS –
- 데뷔년도 1977년(행글라이더 입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