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장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총리 관저를 잇는 권력의 핵심 축을 장악한 인물로 ‘비비(Bibi)’라는 친근한 별명과 달리 강한 생존 본능과 권력 의지를 바탕으로 30년째 권력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 장교로 복무하며 1972년 항공기 납치 사건 진압 작전에 참여해 부상을 입으면서도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이후 1976년 형 요나단 네타냐후가 엔테베 작전에서 전사하면서, 정치 투사로 변신해 이후 반테러 연구소를 설립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핵심 메시지로 삼으며 전략가로 부상했습니다.
평화 협정보다 안보를 우선시하는 강경 노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명확한 메시지 전달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보수 진영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고, 중동 문제를 선악 구도로 단순화해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과 유엔 대사를 지내며 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988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중동 평화협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며 마드리드 중동평화회의와 오슬로 협정에 대해 안보를 보장하지 못하는 위험한 타협이라고 주장하며 강경 노선을 견지했습니다.
1993년 리쿠드당 대표로 선출된 이츠하크 라빈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1995년 라빈 총리 암살 이후 정치적 분열 속에서 지지 기반을 확대 1996년 총리 직선제 선거에서 시몬 페레스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46세의 나이로 최연소 총리에 당선되며 이스라엘 권력의 정점에 올라 30년째 군림하고 있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입니다.

목차
2번 쫓겨나고 전쟁으로 부활한 30년째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1949년 10월 21일 텔아비브에서 유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역사학자 아버지 벤치욘 네타냐후와 어머니 칠라 세갈 사이에서 3남 중 둘째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네타냐후는 시오니즘 운동(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집안에서 어린 시절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오가며 성장했습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그리고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아버지의 교환교수 임지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거주하며 첼트넘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청소년기 미국의 자유분방한 문화와 청년 문화를 접하면서도, 형 요나탄과 함께 자신들의 유대인 정체성에 고민했고 이후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스라엘로 돌아와 국방군에 자원 입대했습니다.
최정예 특수부대인 사예렛 마트칼(이스라엘군 군사정보국 아만(אמ״ן) 소속 직할 최정예 특공대)에서 5년간 복무하며 대위까지 진급했습니다. 복무 기간 중 1968년 카라메 전투, 1972년 사베나 여객기 납치 사건 진압 작전 등 수많은 위험한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사베나 여객기 진압 작전에서는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팔에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1976년 형 요나탄이 엔테베 작전에서 전사하는 비보를 접하고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친형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은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이후 테러리즘에 대한 강경파로 성장했습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제 컨설턴트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고, 이후 이스라엘로 돌아와 요나탄 네타냐후 테러방지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모셰 아렌스 주미 대사의 발탁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1982년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공사참사관을 거쳐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주유엔 대사를 역임했습니다. 유엔 대사 시절 뛰어난 영어 구사 능력과 언변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대표해 국제사회와 소통하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스라엘로 귀국해 리쿠드당 소속으로 크네세트 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츠하크 샤미르 정부에서 외무차관보 등을 지내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유창한 영어 실력과 언론 대응 능력으로 CNN 등 국제 방송에서 이스라엘의 대변인으로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2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패배한 후, 1993년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여 승리하면서 리쿠드당의 새로운 지도자이자 야당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후 중동에서 평화 협상이 시작되면서 강경파의 입지가 줄어들었지만 1995년에 이스라엘의 제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변하게 됩니다.
1996년 5월 치러진 이스라엘 최초의 총리 직선제 선거에서 노동당의 시몬 페레스를 꺾고 제9대 총리로 취임했을 당시 나이 46세로 이스라엘 건국 이후 태어난 사람으로는 최초로 총리직에 오른 인물이 됐습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의 첫 번째 집권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총리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론에 밀려 헤브론 협정과 와이리버 협정을 체결했으나, 평화 협상의 진전이 더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요르단에서 하마스 지도자 칼레드 마샬 암살을 모사드에 지시했다가 실패하여 요르단과의 외교적 위기를 초래하는등 계속되는 비판으로 1999년 총선에서 에후드 바라크에게 패배하며 총리직을 내려놓고 일시적으로 정계를 떠났습니다.
전쟁으로 부활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정계 은퇴 후에는 민간 기업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2001년 아리엘 샤론이 총리로 취임하면서 2002년 샤론 총리로부터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정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했으며, 2003년 총선 이후에는 재무장관을 맡아 강력한 경제 개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샤론 총리의 가자지구 철수 계획에 반대하며 재무장관직을 사임했습니다.
이후 샤론 총리가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카디마당을 창당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리쿠드당에 잔류해 당권을 장악했습니다. 2006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참패한 이후 2009년까지 야당 대표로서 활동면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며 정치적 입지를 회복했습니다. 2009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원내 2당에 그쳤지만, 우파 진영의 승리로 다시 총리직에 복귀했습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두 번째 집권 기간은 무려 12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란의 핵 개발을 국제 사회의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대했으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 시절에는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골란고원 주권 인정을 이끌어냈고,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 아랍 국가들과의 수교를 성사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부터 뇌물수수, 사기, 신뢰침해 등 여러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현직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실패와 잦은 정치적 위기로 인한 조기 총선 반복 등으로 비판을 받고 2021년 6월, 나프탈리 베네트와 야이르 라피드가 구성한 연립 정부가 출범하면서 12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야당이 되며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또2021년 가자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극우파가 득세하고 2022년 12월, 제25대 크네세트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승리하고 극우 정당들을 포함한 연정을 구성하면서 다시 총리직에 복귀했습니다.
2023년부터는 강력한 사법부 개혁을 추진하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지속했습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전시 내각을 구성해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휴전 압력과 인도적 위기에 대한 비판 속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2025년 6월 13일 라이징 라이온 작전(이란 핵시설 & 미사일 기지 타격)으로 이란 이스라엘 전쟁 (일명 이 이 전쟁)이 발발했고 잠시 휴전하는듯 했지만 2026년 3월 이번에는 트럼프의 미국 정부와 함께 폭격하면서 다시 재발발했습니다.
정치 성향은 형의 죽음과 함께 극우에 가까운 철저한 보수주의로 강력한 국가 안보와 자유 시장 경제를 핵심 가치로 삼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도 강경한 입장을 견지합니다. 오슬로 협정에 반대하며 평화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완전한 인정과 비무장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삼불 원칙(골란고원 반환 불가, 예루살렘 분할 불가, 어떤 전제 조건하의 협상도 불가)’으로도 유명합니다. 전쟁광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재임기간 동안 제 완화, 민영화, 재정 긴축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펼쳐 이스라엘 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높은 성장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골란고원 주권 인정을 이끌어냈으며,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30년째 장기간 집권 과정에서 발생한 부패 스캔들과 사법부 개혁 추진 등은 이스라엘 사회에 깊은 갈등을 야기하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이란 전쟁과 네타냐후 임기
2022년 12월 말 총리로 재취임해서 이론적으로 네타냐후 총리 임기는 2026년 10월에 끝이 납니다. 총리 당선 때부터 실각했을 때마다 테러와 전쟁으로 부활했는데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암살사건으로 첫번째 총리에 당선됐습니다.
2008-2009년에는 이스라엘 하마스 간에 가자 전쟁이 발발하면서 야당 총리에서 다시 재집권에 성공했습니다. 2021년에는 비자금 스캔들로 인해서 정치적 치명타를 입고 실각했지만 2021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가자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복귀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권좌에 올라있습니다.
이때문에 이스라엘 이란 전쟁도 2026년 10월에 총리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쉽사리 끝내길 원하지 않는다는 분석입니다.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폭격도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 위한 이스라엘의 복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쟁으로 권력을 이어가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입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수상 및 주요 이력
- 1987년 : 이스라엘 젤트너 상
- 2012년: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 주요이력
- 1967년 ~ 1973년 : 이스라엘 국방군 복무 (사예렛 마트칼, 대위 전역)
- 1972년 ~ 1975년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학사 과정
- 1976년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석사 과정 졸업
- 1976년 ~ 1978년 : 보스턴 컨설팅 그룹 경제 컨설턴트
- 1978년 ~ 1980년 : 요나탄 네타냐후 테러방지 연구소 소장
- 1980년 ~ 1982년 : 예루살렘 림 산업 마케팅 이사
- 1982년 ~ 1984년 :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공사참사관
- 1984년 ~ 1988년 :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
- 1988년 : 제12대 크네세트 의원 당선 (리쿠드)
- 1991년 :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 역할 수행
- 1993년 : 리쿠드당 대표 선출 및 야당 대표 취임
- 1996년 6월 ~ 1999년 7월 : 제9대 이스라엘 총리 (초대 직선제 총리)
- 1996년 ~ 1997년 : 과학기술부 장관 겸임
- 1996년 ~ 1999년 : 주택건설부 장관 겸임
- 2002년 ~ 2003년 : 외무부 장관
- 2003년 ~ 2005년 : 재무부 장관
- 2005년 12월 : 리쿠드당 대표 재선출
- 2006년 ~ 2009년 : 제17대 크네세트 야당 대표
- 2009년 3월 ~ 2021년 6월 : 제9대 이스라엘 총리 (3~5기)
- 2009년 ~ 2013년 : 경제전략부 장관, 보건부 장관 겸임
- 2012년 ~ 2013년 : 외무부 장관 겸임
- 2013년 : 외무부 장관 겸임
- 2020년 5월 ~ 2020년 12월 : 베니 간츠와 순환 총리직 협의, 연정 내각 구성
- 2021년 6월 ~ 2022년 12월 : 야당 대표
- 2022년 12월 ~ 현재 : 제9대 이스라엘 총리 (6기)
베냐민 네타냐후 선거이력
- 1996년 : 이스라엘 총리 선거 당선 (초대 직선제)
- 1999년 : 이스라엘 총리 선거 에후드 바라크 후보에게 패배
- 2009년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승리로 총리직 복귀
- 2013년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 베이테누 승리로 총리 연임
- 2015년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승리로 총리 연임
- 2019년 4월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원내 1당 차지
- 2019년 9월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원내 2당
- 2020년 3월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원내 1당
- 2021년 3월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원내 1당
- 2022년 11월 : 이스라엘 총선 리쿠드당 승리로 총리직 복귀
베냐민 네타냐후 도서 출간
- International Terrorism: Challenge and Response (1981)
- Terrorism: How the West Can Win (1987)
- Fighting Terrorism: How Democracies Can Defeat Domestic and International Terrorism (1995)
- A Durable Peace: Israel and Its Place Among the Nations (1993)
- Bibi: My Story (2022)
베냐민 네타냐후 부인 & 재산
네타냐후 집안은 아버지 벤치욘 네타냐후가 스페인 유대인 황금기의 역사를 연구한 저명한 역사학자였으며, 강한 시오니스트로 2012년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들의 정치적 커리어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칠라 세갈은 2000년에 작고했습니다.
네타냐후 형 요나탄과은 이스라엘 국방군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의 장교였던 형 요나탄은 1976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한 유명한 엔테베 작전을 지휘하던 중 전사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테러리즘에 대한 강경한 대응의 근본적인 동기가 되었지만 반대로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대테러 강경파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남동생 이도 네타냐후는 의사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총 세 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 번째 부인은 미리암 바이츠만으로, 군 복무 시절 예루살렘에서 만나 1972년 결혼했습니다. 당시 미리암은 히브리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며, 결혼 후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두 사람 사이에는 딸 노아가 1978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대학 도서관에서 만난 영국인 유학생 플러 케이츠와의 외도 사실이 발각되면서 이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1981년, 플러 케이츠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고 유대교로 개종했으나, 이스라엘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돌아온 후, 1988년 이혼 소송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아내 사라 네타냐후 여사는 1990년 엘알 항공의 뉴욕발 이스라엘행 비행기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당시 유엔 대사직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귀국하던 중에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 곧바로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1991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사라 네타냐후 여사는 결혼 후 총리 관저에서의 호화로운 생활과 직원 갑질 논란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슬하에는 아들을 두고 있는데 1991년에 태어난 장남 야이르 네타냐후는 군 복무를 마친 후 주로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차남 애브너 네타냐후는 1994년에 태어나 군 정보부대에서 복무했으며, 청년 성서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타냐후 재산은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며 특히 부인 사라 네타냐후 여사가 총리 관저에서의 호화로운 식사 비용과 관련해 국가 예산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혐의로 법적 제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들조차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어 꾸준히 이스라엘 감사원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조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전쟁 근황
이이 전쟁과 별개로 2019년부터 뇌물수수, 사기, 신뢰침해 등 여러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왔으며, 2024년 12월에는 이 재판에 직접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2024년 11월 21일, 국제형사재판소는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하여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 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건강 관련 소식으로는, 2024년 12월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한 요로 감염으로 전립선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2023년 7월 심박 조율기 이식 수술을 받은 데 이은 또 다른 건강 이상 신호로, 고령의 나이에도 강행군 중입니다. 손가락 논란과 함께 사망설이 돌기도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며 전쟁을 이끌고 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프로필
- 영어 : Benjamin Netanyahu / 본명 : 베냐민 네타냐후
- 생년월일 : 1949년 10월 21일 (베냐민 네타냐후 나이 76세)
- 고향 : 이스라엘 텔아비브 / 국적 : 이스라엘
- 키 : 184cm / 몸무게 : 82kg / 혈액형 : – / 종교 : 유대교
- 학력 : 첼트넘 고등학교 졸업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건축학 학사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 석사 /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박사 과정 중퇴
- 군대 이력 : 1967년~1973년 이스라엘 육군 복무 (사예렛 마트칼, 대위 전역)
- 가족 : 부인 (아내) 사라 네타냐후 / 자녀 노아 네타냐후로트(딸), 야이르 네타냐후(아들), 애브너 네타냐후(아들)
- 소속정당 : 리쿠드-국민자유운동
- 의원 선수 : 11
- 개인 SNS : 인스타그램, X(트위터), 페이스북






